내 시에 총구가 있다면: 이소호 시인과의 대화 1부

소호
이소호 시인

이소영은 영국 문예지 Modern Poetry in Translation의 2020년 Writer in Residence (일종의 게스트 에디터)로 초청받아 활동하고 있다. 6월에 에세이 「Not Exactly a Sister」를 출간하고 8월에 이제니 시인의 「치마를 입은 우주소년」 온라인 번역 워크숍을 주도하고 있다. 9월에는 MPT의 후원 하에 웹진 『초과』 5호를 출간할 것이다. 이소호 시인과의 대화는 한국어로 진행되었으며, 이소영 작가가 영문 번역과 편집하였다.


소영: 제가 6월에 발표한 에세이 「언니와 유사 언니들」을 파파고 번역기 돌려서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떠셨나요?

소호: 번역기를 돌려 읽었기 때문에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이름을 부르는 것 역시 시 안에 내포된 정서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니’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지점을 소영님이 에세이에 잘 말씀해주신 것 같아서 굉장히 잘 읽었습니다.

소영: 아, 기계 번역 폄하하실 줄 알았는데 대놓고 엎드려 절 받게 되었네요. (웃음) 넘어갑시다. ‘장녀’가 영어로 번역될 수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외국에서도 큰딸 관련 짤이 많다고 알려드렸습니다. 특히 이민자 가족의 큰딸은 무료 상담 치료를 받을만한 위인이에요. 동시에 한국의 특수성도 있지요. K-장녀는 어떤 존재인가요?

소호: 온라인에서 어떤 단어 앞에 K를 붙인다는 것은 K-pop처럼 좋은 의미도 있지만, 조롱의 의미도 있거든요. 기괴할 정도로 한국적인 것에 붙이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K-장녀는 어머니 다음의 약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가 죽으면 이제 네가 동생의 부모가 된다”라고. 저는 그 말이 아주 끔찍했어요. 동생은 아프고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몰랐죠.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동생의 건강도 나아지면 각자의 생활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저는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말 같았어요.

게다가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가 될 거라는 것도 무서웠어요. 제가 본 가부장제 안에서 엄마와 아내의 역할은 희생의 아이콘이었거든요. 집안의 궂은일을 다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고통을 분담하고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장녀입니다. 장녀는 그래서 집안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죠.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을 요구할 수 없어요. 동생에게 양보하는 희생이 익숙하죠. 그리고 그녀는 자라서 엄마가 되어요. 그때도 기댈 곳은 또 장녀뿐이에요.

소영: 최초로 영어로 출간된 작가님 시는 「동거」였죠. 『캣콜링』의 첫 시이기도 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언제나 화자의 결점을 숨기지 않으시는데, 여기서 경진은 ‘나는 동생의 팔목을 대신 그어 준다’고 덤덤하게 고백해요. 상황 따라 피해자였다가 가해자였다가 방관자가 되는 입체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인터뷰를 남기셨어요. 그것에 대해 한 번 더 여쭤볼 수 있을까요?

소호: 저는 예전부터 인간은 입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시에 나오는 예전에 사귀던 연인도 저에게는 나쁜 사람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저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했던 거겠죠.

저도 동생에게 굉장히 다정하지 못해요. 동생이 저를 사랑하는 방식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동생이 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거든요. 그럼 동생이 제게 이렇게 말을 해요 “언니는 남을 좋아하는 것만큼만 나를 좋아해 봐.”라고요. 저는 항상 “무슨 소리야 남보다 네가 가장 좋아.”라고 말하지만 사실 동생의 말이 맞는 건지도 몰라요. 저는 저보다 친동생에게 훨씬 엄격하고, 사회에서 만난 동생들에게 굉장히 친절해요. 무엇을 함께 하는 것이 마냥 기쁘고, 무엇보다 시진이에게 들었던 감정과 달리 배려도 양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요. ‘참 좋은 언니’라는 이야기를 가족보다 타인에게 더 많이 듣는 것 같아요. 나는 좋은 언니일까요? 아니면 나쁜 언니일까요?

소영: 다른 한국 독자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한데, 전 『캣콜링』을 완독한 뒤 인터뷰를 찾아 읽으면서 ‘경진’이 작가님 본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즉, ‘경진’은 과거의 자신을 인물화 하신 셈이죠. 재밌게도 등장인물 이름을 바꾸지 않고, 아예 필명을 법적 이름으로 바꾸셨다고 읽었어요.

소호: 서양 문화권에서 별자리와 타로를 믿듯이 한국에서는 사주팔자를 믿어요. 경진이라는 이름은 그 사주팔자를 들고 철학관에 가져가서 지은 이름이라고 들었어요. 근데 대부분 철학관에서는 생시(生時)에 맞는 비슷한 이름을 정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경진이라는 동명이인이 그렇게 많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웃음) 아무튼 저는 경진이처럼 평범한 이름은 작가다운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20년 넘게 살았으니 이번에는 내가 정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때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 투표를 진행하여 몇개의 이름 후보를 정했어요. 그리고 철학관에 다시 가서 사주팔자와 후보 이름을 주고 여기에서 가장 복 있는 이름으로 골라 달라고 해서 저는 비로소 소호가 되었어요. 굉장히 민주적이면서 한국적인 이름이에요.

소영: ‘호소’는 한국어로 ‘억울하거나 딱한 사정을 남에게 간곡히 알린다’는 뜻을 가졌죠! 작가님이 즐기시는 말장난이고요. 「소호의 호소」라는 네오다다이스트 시도 쓰셨잖아요?

또 다른 한국적인 요소는 경진-시진의 ‘돌림자’가 있지요. 개명하시면서 탈-돌림자도 의도하신 건가요?

소호: 그건 아니에요. 사실 애초에 우리는 돌림자가 아니었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를 쓰기도 하지만 남성 형제가 아니면 항렬도 돌림도 따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의 자전적 에세이 ‘너와 나와 우리의 사전’에서 언급했지만 말 그대로 ‘각자 다른 철학관에서 지어온 족보에도 없는 괴상한 돌림자’가 우리 두 자매의 이름이었어요. 아무래도 딱 1년 차이의 2월생이어서, 그리고 그 시기에 ‘~진’이란 이름이 많아서 우연히 돌림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소영: 미국 작가 겸 번역가 (올가 토카르주크의 『비행』 번역으로 2018 맨부커 국제상 수상자) 제니퍼 크로프트의 회고록 『Homesick』을 최근에 읽었어요. 비록 회고록이지만, 제니퍼 자신과 여동생 앤 마리의 이름을 에이미와 조이로 바꾸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썼더라고요. 조이는 제 여동생과 작가님 여동생처럼 어려서부터 몸이 아프고, 에이미는 자신을 거의 파괴할때까지 언니 역할을 수행합니다.

크로프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동안 『Serpientes y escaleras』라는 책을 스페인어로 먼저 쓰고, Homesick이라는 영어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박새인 이라는 분이 한국어로 번역한 발췌문도 읽을 수도 있어요! (전체 번역은 다른 번역가분이 곧 시작하신다고 들었어요.)

소호: 저는 가족 이야기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가족은 한 인간이 유일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만나게 되는 가장 작은 사회적 집단이고, 그로 인해 가장 먼저 갈등이 발발하는 곳이니까요. (웃음) 번역가님 덕분에 보내준 발췌문을 읽었는데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정하고 서늘하다는 이 모순적인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글 같았아요.

소영: 『캣콜링』 또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제본기를 사서 집에서 손수 14개의 베타 버전을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소호: 시가 몇 편 모이지 않았을 때, 조금 이른 계약을 한 친구들은 이미 시집 원고를 묶고 있었거든요. 그게 너무 부러워서 저도 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쓴 시를 대충 A4용지에 쓰인 순서대로 붙여봤는데 감정이 들쑥날쑥해서 오히려 한 호흡으로 읽히지 않더라고요. 그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붙여 봤고요. 그것 역시 별로였어요. 그때 실물로 보고 읽히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시집은 모두 A5 사이즈의 변형이니까 그때부터 시도 A5 사이즈에 썼고. 덕분에 홀수와 짝수 페이지를 맞춰야, 한 면에 한 시가 다 들어가서 독자들이 읽기 편하다는 것과 너무 긴 장시 사이에는 잠시 쉴 호흡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캣콜링을 만나기까지 14개의 실물 베타 버전이 생긴 거고요.

소영: “2016년 3월 30일은 시를 처음 묶었던 날입니다. 그리고 2018년 가을, 그 원고는 버전 9.2가 되어서야 캣콜링이란 시집으로 태어났”다고 트위터에 알리셨죠. 버전 9.2는 9.0와 뭐가 달랐나요?

소호: 9.0과 9.2의 가장 많은 변화는 시집의 이름을 ‘경진이네’에서 ‘캣콜링’으로 바뀌었다는 점 같아요. 또 2부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전체가 4부였는데, 아무래도 읽는 흐름으로 봤을 때 2부로 옮겨오는 게 좋겠다 싶어 옮겼어요. 또한 많은 독자분이 가장 신기해하는 시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서로가 서로를’이 5부에 있다가 1부 초반으로 새롭게 배치했는데 굉장히 잘한 일 같아요.

소영: 어떤 계기로 시집 제목을 ‘경진이네’에서 ‘캣콜링’으로 바꾸셨나요?

소호: 처음에는 단순하게 ‘경진이네에서 일어난 일들로 쓴 시니까 경진이네로 해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김수영 문학상 공모전에 내려고 보니 시집 제목으로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공모전은 눈에 띄어야 하니까 고민한 끝에 ‘캣콜링’이라고 정했어요. 당선 후에 시집 제목을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캣콜링’이란 강렬한 제목이 독자들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소영: 일종의 확증 편향인지 모르겠지만, 형제자매에 관한 문학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요즘 가장 좋아하는 영문 시집은 나탈리 디아즈의 『When My Brother Was an Aztec』와 다이애나 코이 웬의 『Ghost Of』 인데 둘 다 화자인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요. 후자는 구상시가 뛰어나기 때문에 『캣콜링』에 실린 구상시와 같이 읽히면 정말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분발해야겠죠? (웃음)

소호: 번역가님이 틈틈이 영어로 저의 구상 시를 재구성해서 보내주실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감탄해요. 영어라 한국어랑 문장 길이가 달라서 맞추는 게 어려웠을 텐데 대단하다 하고요. 구상 시는 보이는 디자인 역시 시의 일부분으로 읽혀야 하므로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번역가님의 작업을 통해 다시금 깨닫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울며불며 더 많이 쓰는 일이고, 번역가님이 그런 저를 도와주신다면 위에서 말씀해주셨던 나탈리 디아즈와 다이애나 코이 웬과 같이 읽힐 수 있겠네요. (웃음)

소영: 타인을 창작 소재로 삼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지만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일입니다. 창작물 안에서 자신을 대변할 기회가 없으니 작가의 꼭두각시 꼴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죠. 『캣콜링』에선 여러 목소리가 실리고 그중 동생 시진씨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디까지’ ‘어떻게’ 묘사되는지 작가님만의 윤리를 가지셨나요? 실명 공개는 동생의 허락하에 이뤄졌다고 읽었어요.

소호: 저희 가족은 전부 시에 나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오기 전에 꼭 보여줍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동생은 실명뿐만이 아니라 시 쓰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게 일기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동생의 목소리로 대신 발화하여 쓴 시를 전달해 주면 이건 정말 내 마음과 같다고 하는 부분을 밑줄을 쳐서 전달하기도 하고요. 고통을 말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 이미 가족의 서포트는 이미 충분하다고 봅니다.

가족 외에도 ‘고발’의 대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본인이 나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기 검열도 철저한 편이라, 본인 혹은 주변에 의견을 물어보고 그 후에도 제가 마음에 걸리면 편집자에게도 의견을 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일은 말 그대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떤 일보다 작가적 윤리가 요구되는 일입니다. 나의 용기 있는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고, 누군가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매번 최우선으로 그 점을 상기하고 굉장히 조심합니다.

그러나 독자분께서 불편해하는 지점을 제가 미처 섬세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까 싶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나의 이야기를 하며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예술을 할 수 없을까 고민했지만 분명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전적 문학을 하는 제가 평생 가져가야 할 업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 시에 등장하는 ‘고발’의 대상이 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싸우겠습니다. 제 시에 총구가 있다면 겨눠야 할 대상은 오로지 그들입니다.

소영: 남자 ‘경진’도 등장하는데요, 4부에 연달아 나오는 「누워있는 경진」와 「나를 함께 쓴 남자들」을 읽으면 여자 ‘경진’이 왜 개명을 결심했는지 한 번에 이해시키는 각주가 있죠: “경진 현대 미술관(KOMA)의 작가 이경진의 첫 남자 친구 이름. 그녀는 동명이인과 연애를 하면서 자아 분열, 분리 불안,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그것이 예술의 영감이 되었다고 밝혔다.”

소호: 한국 속담 중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의 첫 남자친구는 제가 어떤 질문을 하면 ‘연애는 원래 이런 거’라고 말을 하는 바람에 그 후의 연애에도 저는 부당한 관계를 참는 법만 배웠어요. 나중에 지인을 통해서, “나는 경진에게 참 좋은 남자친구였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끝까지 자기 멋대로 기억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제게는 치가 떨리는 첫 연애였는데, 그에게는 좋은 기억이라니. 그래서 썼어요. 미술에서 자신의 과거를 재현하고 과감하게 전시하는 것을 보고 저도 용기를 얻었거든요. 트레이시 에민은 고백의 제왕이니까, 그녀의 작품 기법을 빌려서 써보고 싶었어요. 고통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이 시들은 2부의 시와 맞물려 있기도 해요.

소영: 앞서 언급한 「언니」 에세이에서 말해듯이, 2부의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아니였으면 ‘언니’라는 단어를 이만큼까지 고민 안 했을 것 같아요. 제목의 Oppa가 낯설 독자도 있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독자는 다른 지식을 가져올 테고, 첫인상의 온도 차이가 있을거에요. 그래도 이번 작품 통해 오빠의 징글함이 잘 전달될거라 믿어요. “다른남자였으면진작헤어졌겠다이번에도봐줬다내가다음부터그러지마정힘들면술마시고잠이나자너그런거잘하잖아”를 말이라고 뱉는 뻑보이. 아, fuckboy 들어보셨나요? 새벽에 ‘자니?’ 문자 보내는 구남친도 뻑보이입니다.

소호: 가는 나라 중에 꼭 한 명씩은 처음 본 외국인이, 저를 보고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물으면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인이 웃을 거라고 누가 알려줬다는 거예요. 정말 불쾌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빠라는 말은 이미 범세계적인 말이에요. 영어로 된 구남친짤은 이미 많이 보았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네’ 생각했었는데, 이미 단어가 있는 만큼 긴 설명이 필요 없겠어요.

소영: 담당 편집자 아나스타시아와 니콜리스 씨랑 저는 『캣콜링』에 나오는 남자들을 That Guy(그놈)이라고 불러요. 아, 2013년도부터 ‘문예창작학과 그놈’을 패러디하는 트위터 계정까지 있어요. 딱 느낌 오시죠? (웃음) 하지만 ‘문창과 그놈’과는 사뭇 달리, 『캣콜링』에 나오는 남자들은 가정의 아버지, 교회의 아버지, 문단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는 선배이든 제도적 권력을 지닙니다. 대표적으로 최승자 작가님과 비교하면서 소호 작가님과 작품을 폄하하는 「송년회」의 꼰대 화자가 있지요. 제 번역이 가을에 미국 잡지에 출간될 건데, 독자가 ‘이건 알고 읽으면 좋겠다’는 점 있으신가요?

소호: 장유유서란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사회적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유교 사상에서 나온 말인데, 대부분 꼰대 문화가 다 장유유서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장유유서에 따른 호칭 문화가 있기 때문에 수직과 위계가 존재하죠. 위계는 질서를 만들지만, 그 질서가 꼭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위계에 의해 구축된 질서는 폭력의 씨앗입니다.

소영: ‘문단’의 사전적 정의는 ‘문인들의 사회’이며, 널리 쓰이는 영어 번역은 literary circle(문인 친목 단체) 입니다. 하지만 저는 literary establishment(문예 기관)이라고 번역했어요. Literary circle은 이상 시인이 활동했던 ‘구인회’도 있었고, 현재는 이제니 작가님이 활동하시는 ‘텍스트 실험집단 루’도 있고요. 그러나 한국의 ‘문단’은 기관 그 자체죠. ‘신춘문예’라는 문예 경연 대회에 시를 제출하고, 뽑히면 등단하는 형식적인 과정이 있다고 알아요.

소호: 제가 등단하던 시기만 해도 제도를 거쳐서 문예지에 발표하고 그 작품이 눈에 띄어서 시집 계약을 해야 하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많이 달라지는 추세예요. 동네 서점의 독창적 큐레이션과 독립 문예지의 실험정신도 너무 좋고요. 요즘에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등단 제도에 관계 없이 좋은 시인들의 시집을 출판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좋은 모습이고 또한 옳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는 등단 여부는 상관없어요. 더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싶은 마음뿐이고, 더 좋은 시를 쓰는 작가들이 더 많은 지면을 얻거나 시집 출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비좁은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영: 이번 인터뷰에서 여성 작가와 문단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으시다고 꼭 짚으셨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한숨) #문단_내_성폭력?

소호: 일단 반성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는 문단 내 패잔병입니다. 과거 여러 추행의 최전방에 있었고, 진심 어린 호소에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해자로부터 졌고, 앞으로도 질 것이란 생각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패배감이 휩싸여서 여성 작가에게 가해지는 언어 혹은 신체적 폭력을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큰일을 겪은 이후에 제가 했던 가장 적극적 태도는 자리를 피하거나, 굉장히 거침없이 대꾸하여 소위 말하는 기가 센 여성이 되어 “쟤는 건들지 말자.”라는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아닌데. 그때의 저는 이곳은 내가 다니는 직장이고, 내가 참고 조금 더 연차가 차면 바꿀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만행을 보고 내가 힘을 가져야 바뀔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합니다. 사실 연차가 차지 않아도 변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고 있습니다. 고압적인 원고 청탁 방식이나 원고료 지급 문제를 비롯하여 그동안 만연했던 문단 내의 부조리함을 하나씩 공론화하는 후배 작가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용기에 힘입어 저는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볼까 합니다.

그동안 문단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단연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운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입니다. 위계에 의한 폭력 혹은 추행을 피해자가 직접 발설하는 굉장히 유의미한 운동인데, 이때도 저를 비롯한 여성 작가들은 또 다른 가해를 받았습니다. 저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가해 사실을 알리라는 압박이 잇달았습니다. 그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었습니다. 물론 성별을 막론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응원의 메시지도 있어 매우 큰 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의 상처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용기를 낸 수많은 피해자들을 연대 할 시간에 일일이 ‘너도 당했지? 그러니까 빨리 말해봐.’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겠죠. 그들은 다만 이 운동의 불꽃으로 평소 눈엣가시였던 누군가를 태우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의 상처는 땔감에 불과했습니다.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폭로를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일입니다. 전자는 연대이고 후자는 2차 가해니까요.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고발과 폭로는 대리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한다면 피해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다리고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피해자의 도덕성을 검증할 시간에 피해 사실에 집중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거나, 말하지 않기로 한 피해자들을 다그치지 마세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발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하세요. 일례로 제가 시를 쓰는 것처럼요.

소영: 듣기만해도 끔찍하지만, 정말 큰 용기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반성하고 번역판의 부조리함을 바꿀 의지력을 키웁니다.뿌리 깊은 불평등인 만큼 뽑기 어려울 것 같아요. 김현경 선생님의 회고전 『김수영의 연인』을 읽었는데, “당시만 해도 가끔씩 큰 출판사에서 주요 문인들을 불러다가 술을 대접하고 여자까지 붙여주는 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부인은 그것을 예술가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셨고요.

소호: 너무 충격적이네요. 출판사는 작가와 함께 좋은 작품을 출판할 수 있도록 공생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저런 화대가 작가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네요. 차라리 생활비를 줬다던가,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챙겨줬으면 이해라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생소한 일도 아니네요. 문단 내 성폭력 이전, 그러니까 제가 막 등단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등단한 젊은 여자 신인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다며 몇 번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가지 않아 큰 일은 면했지만, 콕 집어 여자 후배를 찾는 남자 선배나, 선배에게 여자를 붙여주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남자 후배는 과거와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소영: 『캣콜링』 제목에 충실하게 ‘경진’이 받은 언어폭력을 재구성하는 시가 많습니다. 그와 달리 「사과문」은 작가님 관점에서 쓰였는데도 (“안녕하세요, 시 쓰는 이소호입니다”라고 시가 시작하는데, 저한테 보내신 이메일 인사말이기도 했죠) 목소리가 되게 낯설어요. “앞으로는 자극적인 단어는 지양”한다고 약속하며 2부를 마치는 엄숙한 글인데, 4부 시작부터 ‘경진’은 다시 쌍욕을 하고 뺨을 맞고 죽어버리죠. (웃음)

소호: 진짜 사과의 의미도 있고, 그 사과를 하고 또 잘못을 저지르는 점이 인간이기도 하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웃음)

소영: 공인의 사과문이 워낙 많아져 ‘사과문 하위장르’가 생긴 현대 사회의 풍자로 읽었어요.

소호: 정확히 보셨어요. 공인의 사과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그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까 더는 보고 싶지 않은데,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겠다니… 그게 사과를 하는 대상을 위한 보답이라는 게, 그것만큼 이상한 말이 어디 있나 싶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소영: 마지막으로 서울예대서 김혜순 작가님 수업을 들으셨다는 사실을 많은 영미권 독자들이 알고 싶어할 것 같아요. 최돈미 번역가님의 노고를 통해 이제 ‘한국 시’하면 ‘김혜순’ 할 만큼 유명하셔서 이소호 작가님도 비교될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스승이자 대선배님과 같이 읽힐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호: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요. 한국에서는 김혜순 교수님은 스승님이자 시인으로는 대선배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거리가 아주 먼데 이렇게 읽힐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네요.

소영: 너무 겸손하세요! 한국 페미니스트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 이미 김혜순 작가님은 물론, 김언희 작가님과 같이 읽혀지셨잖아요!

소호: 그런가요? 저는 지금도 문예지에서 김혜순 교수님 신작 시를 발견하거나, 새로 출간된 시집을 보면 언제나 반성하는걸요. 가르침대로 잘 쓰고 있는가 싶어서.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김혜순 교수님은 아마 절대로 모르시겠지만, 저에게는 서울예대 수업 중에 제 시에 대해서 한 말들을 적어놓은 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보물이에요. 지금도 가끔 읽는데, 시를 쓰며 경계해야 할 것들이 다 적혀 있거든요. 그 노트 안에 적혀 있기로 그 당시 교수님이 제게 해 주신 유일한 칭찬은 ‘재미있다’인데 저는 풍자와 해학의 민족 한국인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재미있는 시를 좋아했고, 지금도 웃기지만 슬픈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데요. 보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거기 초심이 있어요. 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으려고요.

소영: 맞아요. 정말 재밌어요! 희망을 품고 인터뷰 제목을 「이소호 작가님과의 대화 1부」라고 지었고, 언제 또는 어디서 2부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얘기할 게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무주의 유년 시절, 남미 배낭여행과 시진의 개입, 뉴욕살이와 미술관… 또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요?

소호: 무엇이든 할 수도, 될 수 있어요. 저는 아직도 할 말이 많아요.

『캣콜링』 영어번역본은 2021년 봄에 Open Letter Books 통해 출판됩니다.


 

Author photo for So J Lee이소영은 1.5세 한국계 미국인 번역가 겸 작가다. 옮긴 책으로 이혜미의  『뜻밖의 바닐라』 (Tilted Axis Press, 2020), 최진영의 『 해가 지는 곳으로』 (Honford Star, 2021), 이소호의  『캣콜링』 (Open Letter Books, 2021)이 있다. 또한 한국어 시 한 편과 다수의 영문 번역을 선보이는 웹진 『초과』를 만든다. Modern Poetry in Translation의 2020년 Writer in Residence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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